우리는 살아가며 만남과 이별을 반복한다. 떠나간 것, 그리고 떠나온 것에 대한 그리움은 당연하다.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내가 나고 자란 고향 땅에 대한 그리움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토지}는 '토지'와 '삶'이 뿌리내린 고향에 대한 애착, 그리고 그로 인한 인간의 강인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1. 삶의 뿌리를 말하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는 1897년 갑오개혁 직후부터 1945년 해방까지의 시기를 배경으로 하여, 경상남도 하동 평사리와 만주, 서울, 일본 등을 오가며 전개되는 방대한 서사를 담고 있다. 작품은 최참판댁이라는 대지주 가문을 중심으로, 이 가문이 몰락해가는 과정을 따라가며 그 주변의 인물들이 시대의 격랑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촘촘히 그려낸다. 특히 주인공 서희는 최참판가의 손녀로, 가족의 몰락과 함께 외세의 침탈, 식민 지배, 독립운동이라는 큰 역사의 물결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여성으로 묘사된다. 그녀의 삶은 곧 ‘토지’와 ‘삶’이 뿌리내린 고향에 대한 애착,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 정신의 강인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토지}의 가장 큰 특징은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해 각자의 서사를 만들어간다는 점이다. 소작농, 노비 출신, 상인, 독립운동가, 천민 등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이 저마다의 가치관과 생존 방식으로 시대를 살아낸다. 이들은 얽히고설킨 인간관계 속에서 사랑하고, 배신하고, 희생하며,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에 자신을 던진다. 박경리는 이 모든 인물들을 단지 역사적 장치로만 활용하지 않고, 그들 하나하나의 내면을 깊이 있게 조명하며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이 작품은 단순히 개인의 성장기나 가족의 몰락을 다룬 서사에 머무르지 않는다.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적 현실과, 뿌리째 흔들리는 민족 정체성, 그리고 여성의 삶을 동시에 천착하며 한국 현대문학의 깊이를 넓혔다. 특히 박경리는 여성 작가로서 당시 남성 중심의 서사에서 벗어나, 여성 인물들에게 주체성을 부여하고 강인한 생명력과 주도적인 삶의 모습을 강조한다. 주인공 서희는 시대의 피해자이자 능동적 저항자로서, 단지 운명에 휩쓸리는 인물이 아닌 자신의 결단으로 시대를 살아내는 주체로 그려진다. {토지} 는 제목 그대로 ‘땅’이라는 존재를 중심에 놓는다. 이 땅은 단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조상들의 피와 땀이 서린 유산이자 인간의 생존과 정체성을 연결짓는 상징으로 기능한다. 인물들은 그 땅에서 태어나고,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며, 그 속에서 자신의 삶과 죽음을 반복한다. 이는 곧 인간이 자연과 공동체, 역사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토지} 는 한국 문학사에서 가장 방대한 서사이자 가장 치열한 문학적 성취 중 하나로 손꼽힌다. 박경리는 이 작품을 통해 단순한 개인이나 집안의 이야기를 넘어서, 민족 전체의 고통과 생존, 그리고 정체성의 문제를 그려냈다.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며 한 인간의 서사가 곧 민족의 역사와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를 체감하게 되며,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 대한 깊은 사유를 떠올릴 수밖에 없게 된다. {토지} 는 단지 과거를 다룬 역사 소설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반드시 되새겨야 할 삶의 본질에 대해 말하고 있다.
2. 땅을 잃은 인간
요즘 부자들 사이에서 최고의 가치를 지니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땅이다. 특히 인구 밀집이 심한 대한민국 특성 상 중심지의 땅 가치는 점점 치솟고 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땅을 너무 돈 그 자체로만 보는 경향은 땅의 가치를 망각한 어리석은 행동이다. 땅의 가치를 망각하면, 땅을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은 점점 작아질 것이고, 그것이 행동으로 옮겨지며 땅을 잃고 비로소 인간 스스로도 잃게 되고 말 것이라고 생각한다. 땅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조상들의 숨결이 서려 있는 유산이며, 인간이 삶을 영위하고 정체성을 형성해온 가장 근원적인 터전이다. 박경리의 {토지}는 이러한 땅의 의미를 냉혹할 만큼 집요하게 되짚으며, 땅을 소유의 대상으로만 여긴 인간의 탐욕과 몰락을 묘사한다. 근대화와 식민 지배, 그 속에서 흔들리는 민중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땅이 단지 경제적 가치로 환산 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극심한 혼란의 시대에도 땅을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은 단순히 ‘소유’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반대로, 땅을 수단으로만 여긴 이들은 결국 그 뿌리를 잃고 표류한다. 땅은 곧 공동체의 기억이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의 윤리적 지향점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떤 땅을 딛고 서 있는가?” 그리고 “그 땅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3. 나의 성찰
나는 많은 부를 쌓고 싶어하는 사람으로서 땅을 금전 그 자체로 생각하였다. 어리석게도 가끔은 땅 면적이 작은 대한민국을 원망한 적도 있고, 땅의 가격이 주식처럼 오르내릴 때 마다 내 감정의 기복도 오르내릴 정도로 땅을 철저히 돈 그 자체로 생각하였다. 소설 속 인물들은 땅을 ‘가지기 위해’ 싸우기도 했지만, 결국은 땅이 곧 ‘자기 자신’이었기 때문에 그 위에 다시 돌아오려 했다. 최참판댁 사람들, 백성들, 소작농들 모두 고단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땅을 떠나지 못한다. 그 땅엔 단순히 곡식이 자라는 게 아니라, 조상의 숨결, 공동체의 기억,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이 함께 뿌리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요즘 매달 월세를 내는 집에서 살고 있다. 내 이름으로 된 땅은 없다. 가끔은 ‘내가 정말 이 도시에 뿌리내리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든다. {토지} 를 읽고 나서야 깨달았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땅’과 ‘돈’의 의미를 거의 같은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박경리는 그걸 완전히 다르게 본다. 그녀는 말한다. 땅은 돈이 아니라, 삶의 자리이고, 마음의 근거라고. 이 책은 내가 땅을 소유하고 있느냐의 문제보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묻는다. 뿌리 없이 떠도는 삶은 결국 어딘가에서 방향을 잃기 쉽다. 땅이란 건, 결국 자신이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돌아가야 할지를 기억하게 만드는 기준점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하게 되었다. 꼭 물리적인 땅이 아니더라도, 나만의 ‘토지’를 지켜야 하지 않을까. 돈이 아닌 관계, 기억, 가치 같은 것들 말이다. {토지}는 그런 의미에서, 단순한 역사 소설이 아니라, 나라는 인간이 어디에 뿌리내려 살아갈 지를 고민하게 만든 깊은 질문이었다.